안녕하세요, 시니어그라운드입니다.
첫 번째 인문학 여행지는 멀리 가지 않습니다. 서울 남산입니다. 어릴 적부터 멀리서 바라보던 그 산이, 어느 날 갑자기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 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약 30년 전 캐나다에서 품었던 작은 부러움이, 50대 중반에 전혀 다른 꿈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20대에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갔었다. 밴쿠버와 멀지 않은 빅토리아의 어학원에서 만난 강사 마크는 서른 살이 채 안 되어 보였다. 호주에서 1년, 일본에서 2년, 브라질에서 6개월을 살았다고 했다. 전부 영어를 가르치면서.
"너는 영어만 하면 세계 어디서든 일할 수 있잖아." 내가 말했다. 마크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지. 영어가 내 여권이야." 그 말이 오래 남았다. 부러웠다. 한국어는 한국에서만 쓰는 언어인데, 영어는 전 세계가 배우고 싶어 하는 언어니까. 태어난 나라의 언어 하나로 세계를 여행하며 살 수 있다는 것. 그게 진짜 부러웠다.
어학연수를 마치고 돌아와서 회사를 다녔고, 결혼을 했고, 아이를 키웠고, 법인을 세웠다. 30년이 흘렀다. 마크의 말은 잊었다고 생각했다.
작년 가을, 집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옆 테이블에 외국인 대학생 서너 명이 앉아 있었는데, 한국어로 주문을 하고 있었다. 서툴지만 또박또박. "비빔밥 하나, 된장찌개 하나 주세요." 발음이 꽤 좋았다. 프랑스에서 온 아이들이었다. K-pop을 좋아해서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날 밤 집에서 인터넷을 뒤졌다. 전 세계 한국어 학습자가 점차 늘어나고 있으며, 세종학당도 전 세계에 퍼져 있었다. 유튜브에는 한국어 수업 영상이 수만 개 올라와 있었다. 10대, 20대 아이들이 한글을 따라 쓰는 영상에 댓글이 수천 개씩 달려 있었다.
그때, 30년 전 마크의 말이 갑자기 떠올랐다. "영어가 내 여권이야." 그런데 지금, 한국어도 여권이 될 수 있는 세상이 온 거 아닌가.
여행작가학교 동문회를 통해 한국어 교원 자격증이라는 게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3급부터 시작할 수 있고, 일정 과정을 이수하면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나는 2급 자격증을 위해 사이버대학에 등록했다. 시간 날 때마다 온라인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50대 중반에 다시 공부를 한다는 게 쑥스럽기도 했지만, 이상하게 설렜다.
공부를 시작하고 한 달쯤 지났을 때, 주말 오후에 혼자 남산에 올라갔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머리를 좀 식히고 싶었다. 케이블카를 타지 않고 걸어서 올라갔다. 중간에 숨이 차서 두 번 쉬었다. 체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다리가 먼저 알려줬다.
남산타워 전망대에 서니 서울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한강이 가로지르고, 강남의 빌딩들이 빛나고, 북쪽으로는 북한산이 보였다. 30년 동안 이 도시에서 살았는데, 이렇게 내려다본 적이 몇 번이나 됐을까. 어릴 적부터 늘 바라보던 남산이었는데.
몇 년 후면 은퇴를 한다. 다만, 어느 나라의 작은 교실에서 칠판에 "안녕하세요"를 쓰고, 외국인 학생들이 따라 읽는 소리를 듣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마크가 빅토리아에서 그랬던 것처럼. 30년 전에는 부러움이었던 것이, 이제는 나의 꿈이 되었다.
남산에서 내려오는 길, 계단을 밟으며 중얼거렸다. "한국어가 내 여권이 될 수 있을까." 웃음이 났다. 50대 중반에 이런 꿈을 꾸다니. 그런데 웃기지가 않았다. 진지했다. 가슴이 뛰었다. 20대 때 캐나다행 비행기를 탔을 때처럼.
집에 도착해서 아내에게 말했다. "나 은퇴하면 외국 가서 한국어 가르칠 거야." 아내가 나를 봤다. "갑자기?" "갑자기가 아니야. 30년 걸렸어." 아내가 한참을 보더니 말했다. "그래, 당신한테 어울리겠다." 그리고 덧붙였다. "나도 같이 가도 돼?"
그 말에, 남산에서 본 서울의 풍경보다 더 넓은 세상이 열리는 기분이었다.